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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런 버핏이 유일하게 한국에서 산 회사, 그 이름에는 원래 '대한'이 있었다

    버핏이 한국에서 산 유일한 회사

    세계 최고의 투자자가 평생 서울 한 번 밟지 않다가, 대구 산골의 작은 공구 공장은 두 번이나 찾아왔다면 믿어지시나요? 오늘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유일한 한국 자회사 '대구텍(옛 대한중석)'의 이야기를 통해, 74년에 걸친 흥망과 부활, 그리고 지금 다시 뜨거워지고 있는 텅스텐 공급망 전쟁까지 짚어보겠습니다.

    나라의 지갑에서 IMF 매각 목록까지

    이야기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해, 정부는 강원도 영월 상동광산에서 캐낸 텅스텐(중석)을 미국에 팔기 위해 '한미 중석 협정'을 맺고 국영기업 대한중석을 세웁니다. 텅스텐은 쇠보다 두 배 무겁고 녹는점이 가장 높은 금속 중 하나로, 포탄과 절삭공구의 날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산업의 이빨'이었습니다. 당시 반도체도, 자동차도, 조선도 없던 대한민국에서 대한중석 한 회사가 전체 수출의 절반에서 60%를 담당했을 정도로 이 회사는 문자 그대로 나라의 지갑이었습니다. 훗날 포스코를 세운 박태준이 사장을 지내며 부실기업을 흑자로 돌려놓은 곳도 바로 이곳이었죠.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값싼 중국산 텅스텐이 쏟아지면서 국제 가격이 폭락했고, 1994년 상동광산은 결국 문을 닫습니다. 광산은 잃었지만 회사에는 자산이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원석을 그대로 파는 대신 이를 가공해 초경합금 공구로 만들어 더 비싸게 팔겠다며 일찌감치 대구에 세워둔 가공 공장이었습니다. 그러나 1994년 공기업 민영화 1호로 거평그룹에 팔린 이 회사는 4년 뒤 IMF 외환위기로 거평그룹이 부도나면서 다시 시장에 나오게 되고, 1998년 결국 이스라엘 기업 이스카(ISCAR)에 인수되며 '대구텍'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나라 이름을 달고 태어난 회사가 결국 외국계 회사가 되어버린, 씁쓸한 IMF 매각 목록의 한 줄이었습니다.

    두 장 짜리 편지가 40억 달러를 움직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우연이 등장합니다. 대한중석이 세워진 바로 그 1952년, 지구 반대편 이스라엘 갈릴리에서는 나치를 피해 온 유대인 청년 스테프 베르트하이머가 뒷마당 헛간에서 절삭공구 회사 이스카를 창업했습니다. 학벌도 자본도 없던 피난민 청년의 회사는 반세기 만에 세계 정상급 절삭공구 그룹으로 성장했고, 위기에 처한 기업을 알아보는 안목도 남달랐습니다. 1998년 IMF로 매물로 나온 대한중석 공장을 인수한 것이 바로 이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늦가을, 이스카 회장 에이탄 베르트하이머가 워런 버핏에게 단 두 장 짜리 편지를 보냅니다. "우리는 이런 회사이고, 버크셔 해서웨이가 이상적인 집이 될 것 같다"는 짧은 내용이었습니다. 버핏은 이 편지를 두고 "인격과 재능이 종이에서 튀어나왔다"라고 표현했고, 2006년 5월 이스카의 모회사 IMC그룹 지분 80%를 40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이 발표됩니다. 이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창립 이래 처음으로 미국 밖 회사를 통째로 인수한 사례였습니다. 40년 넘게 미국 회사만 사들이던 버핏의 첫 해외 인수 대상이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공구 회사였다는 점에서 세계 언론이 주목했습니다. 버핏의 투자 철학은 단순합니다. 화려한 기술보다 사람들이 100년째 쓰고 있고 100년 뒤에도 쓸 물건, 아무나 못 만들지만 누구나 매일 소모하는 물건을 좋아합니다. 절삭공구는 자동차, 조선, 스마트폰 등 금속이 들어가는 모든 제조업에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소모품이라 반복 매출이 나오고, 화려하지 않아 경쟁자도 몰리지 않는, 그야말로 버핏이 사랑하는 '지루하지만 단단한 사업'의 전형이었던 것입니다.

    30년 만에 되살아난 광산, 다시 뜨거워진 텅스텐

    2007년 버핏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는데, 청와대도 여의도도 아닌 대구텍 공장을 가장 먼저 찾았습니다. 그리고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아시아 순방 일정이 통째로 흔들리던 와중에도 그는 다시 대구를 찾아 제2공장 착공식에 참석하며 "아시아에서 내가 두 번 찾은 도시는 대구가 유일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2013년에는 IMC 남은 지분 20%까지 마저 사들이며 대구텍은 버크셔의 완전한 자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장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바로 30년간 잠들어 있던 강원도 상동광산의 부활입니다. 중국이 희토류에 이어 텅스텐마저 수출 통제 카드로 꺼내들면서 국제 텅스텐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세계 공급의 약 80%를 쥔 중국 밖에서 대체 광산을 찾던 서방 국가들의 눈에 상동광산이 다시 들어온 것입니다. 캐나다 기업 알몬티가 이 광산을 인수해 나스닥에도 상장했고, 지난해부터 재가동에 들어가 올해 6월에는 30년 만에 텅스텐 정광 생산이 재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알몬티가 이 사업을 위해 세운 한국 자회사의 이름이 바로 '알몬티 대한중석'입니다. 1994년 민영화와 함께 사라졌던 그 이름이 30년 만에 같은 산 앞으로 돌아온 것이죠. 다만 냉정하게 볼 지점도 있습니다. 대구텍의 이익은 결국 버크셔로 귀속되고, 상동광산의 주인도 한국 자본이 아닌 캐나다 기업이며, 알몬티는 올해 초 1억 달러 적자를 발표하며 주가가 하루 14%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텅스텐 가격이 여전히 중국 손에 좌우되는 구조도 1992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론: 지금 헐값으로 보이는 것의 진짜 가치는 20년 뒤에 드러난다

    이 이야기가 개인 투자자에게 주는 함의는 단순한 옛날이야기 이상입니다. 첫째, 위기 국면에서 헐값에 넘어간 자산의 진짜 가치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IMF 때 팔려나간 대한중석이 그랬듯, 지금 우리가 마주한 반도체·방산·희토류 공급망 경쟁도 결국 같은 시험지 위에 있습니다. 지금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소재·자원 기업이 20년 뒤 전략자산으로 재평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동광산의 부활이 정확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투자자로 꼽히는 버핏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선택한 회사가 반도체도 배터리도 아닌 74년 된 공구 회사였다는 점은 투자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유행을 좇기보다 꾸준히 소모되고 반복 매출이 나오며 아무나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지루하지만 단단한 사업'에 대한 그의 원칙이, 화려한 성장주에만 쏠리기 쉬운 우리의 투자 습관에 질문을 던집니다. 셋째, 이 반전의 무대가 서울이 아니라 대구와 강원도 영월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수도권 바깥의 제조업·자원 기지가 지정학적 재편 속에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IMF 당시 대한중석 매각이 '어쩔 수 없는 생존의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두고두고 아까운 매각'이었는지는 여전히 답이 갈리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분명한 건, 나라를 먹여 살렸던 이 금속의 단단함이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녹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텅스텐이라는 소재처럼, 정말 좋은 자산은 위기를 거쳐도 부러지지 않고 무뎌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이 회사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